겉보기엔 멀쩡한데 왜 버려졌을까: 기와 재사용에 대한 의문
전통 건축 유적이나 오래된 한옥을 살펴보면, 깨진 기와가 대량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이 중에는 한쪽만 금이 가거나, 모서리 일부가 떨어져 나갔을 뿐 외형상 크게 손상되지 않은 기와도 적지 않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손봤다면 다시 쓸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든다. 그러나 전통 건축에서 깨진 기와는 대부분 재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기술 부족이나 자원 낭비 때문이 아니라, 기와라는 재료가 가진 구조적 특성과 건축 방식에서 비롯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겉보기 손상과 실제 기능 저하는 전혀 다른 문제였고, 장인들은 이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기와는 구조물의 일부였다: 단순한 덮개가 아닌 역할
기와는 단순히 지붕을 덮는 장식물이 아니라, 지붕 전체 구조의 일부로 기능한다. 전통 기와지붕은 수키와와 암키와가 일정한 각도와 간격으로 겹쳐지며, 이 맞물림을 통해 물길과 하중 분산이 이루어진다. 이때 기와 한 장의 곡률이나 모서리 상태가 조금만 달라져도 전체 배열에 영향을 준다. 깨진 기와는 맞물림이 불완전해지고, 그 틈으로 물이 스며들거나 하중이 특정 지점에 집중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기와는 ‘정지된 상태’보다 ‘환경 변화 속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비·눈·바람, 낮과 밤의 온도 차가 반복되면서 미세한 균열은 빠르게 확대된다. 장인들은 이런 특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손상된 기와를 다시 사용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더 큰 수리 비용과 위험을 초래한다고 판단했다. 즉 깨진 기와를 버린 것은 낭비가 아니라, 전체 구조를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전통 기와 제작 방식이 만든 재사용의 어려움
전통 기와는 자연 점토를 이용해 수작업으로 성형하고, 가마에서 고온으로 소성해 만든다. 이 과정에서 기와는 단단해지지만 동시에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목재처럼 깎아서 다시 맞추거나, 금속처럼 녹여 재형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 번 깨지면 원래의 강도와 형태를 회복할 수 없다는 점이 기와의 가장 큰 특징이다.
또한 전통 기와는 완전히 동일한 규격으로 생산되지 않았다. 같은 가마에서 구워진 기와라도 미세한 크기와 곡률 차이가 존재했다. 이 때문에 특정 위치에 맞춰 얹혔던 기와를 다른 자리로 옮겨 사용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깨진 기와를 다시 쓰기 위해 다른 기와와 조합하면, 전체 배열의 균형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았다. 이러한 이유로 장인들은 “쓸 수 있어 보이는 기와”보다 “확실히 안전한 새 기와”를 선택했다.
과거에는 정말 재활용을 안 했을까: 다른 방식의 활용
깨진 기와가 전혀 활용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지붕 재료’로 다시 쓰이지 않았을 뿐이다. 기록과 유적을 보면, 깨진 기와는 담장 기초, 배수로 바닥, 마당 포장, 토양 배수층 등 보조적 용도로 활용된 사례가 적지 않다. 이는 기와가 무기질 재료로서 물에 강하고, 쉽게 썩지 않는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즉 전통 사회에서도 기와의 재활용 개념은 존재했지만, 구조적 안전이 요구되는 지붕에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었다. 이는 오늘날 건축에서 구조 부재와 비구조 부재를 구분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재사용하지 않는 태도는, 전통 사회가 오히려 안전과 지속성을 중시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깨진 기와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
현대에 들어 깨진 기와는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는 전통 방식 그대로의 재사용이 아니라, 분쇄·가공을 통한 재자원화 형태다. 깨진 기와를 잘게 부수어 조경용 자재, 배수층, 친환경 블록, 단열 보조재 등으로 활용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에는 버려질 수밖에 없던 기와가 새로운 자원이 되고 있다.
이 변화는 전통 기와의 한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특성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결과다. 전통 사회에서는 구조적 안전을 위해 재사용을 피했고, 현대 사회에서는 기술을 통해 다른 방식의 활용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깨진 기와가 다시 쓰기 어려웠던 이유를 이해하면, 전통 건축이 결코 비효율적이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드러난다. 그것은 당시 조건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고, 오늘날 우리는 그 선택을 존중한 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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