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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통 기와

와당 문양에 담긴 상징

와당은 지붕 끝을 마감하는 구조 부재이지만, 단순한 보호 장치를 넘어 건축물의 정체성과 위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상징 매체였다. 문양의 선택과 배열 방식은 종교적·정치적·사회적 의미를 암호화한 기호 체계로 작동했으며, 따라서 와당은 건축 공간을 의미화하고 외부와 소통하는 기능을 수행한 건축적 언어로 이해될 수 있다.

 

연꽃 와당의 상징: 불교적 정화·재생·우주 질서의 표현

연꽃 문양은 와당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불교의 상징’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게 피어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 성장 과정은 수행을 통한 인간의 깨달음과 연결되며, 그래서 사찰 건축에서 연꽃 문양이 선호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연꽃 문양이 불교 수용 이후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주의 중심과 사방 질서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존재했다는 점이다. 연꽃의 중심은 세계의 축, 즉 중심을 의미하고 주변으로 퍼지는 꽃잎은 사방위와 대칭적 질서를 나타낸다. 따라서 연꽃 와당은 건축물이 국가적 신성성과 종교적 의미를 갖춘 공간임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였다. 특히 신라 시대 연꽃 와당의 방사형 구성은 미적 취향이라기보다 건축 공간이 우주 질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철학적 목적을 포함한 것이었다. 연꽃 와당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건축이 지향하는 세계관을 말없이 전달하는 시각 언어였다.

 

와당 문양에 담긴 상징

 

봉황 와당의 상징: 권력의 정당성과 통치 정신

봉황 문양은 흔히 왕실의 권위를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의미는 더 깊다. 고대 문헌에서 봉황은 덕 있는 군주가 있을 때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라고 기록된다. 따라서 봉황이 문양으로 사용됐다는 것은 단순히 권력의 웅장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올바른 정치 수행을 약속하는 선언에 가까웠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봉황 와당이 궁궐뿐 아니라 관청과 교육 기관에도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권력자가 덕과 책임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보여준다. 봉황의 꼬리 깃털이 반복적 곡선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수와 배열의 규칙성은 건물의 위계를 구분하는 시각적 암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즉 봉황 와당은 권력을 행사하는 자의 품격과 덕성을 강조하며 자신을 속박하는 윤리적 약속까지 담아낸 문양이었다.

 

 

당초문양 와당의 상징: 생명의 확장과 시간의 순환

당초문양은 덩굴 식물이 끝없이 뻗어나가는 모습을 묘사한 문양이며 백제와 통일신라 시기에 특히 많이 쓰였다. 단순한 곡선 장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명력, 번영, 시간의 반복과 영속성을 상징한다. 덩굴이 잎을 내고 줄기를 계속 확장하는 모습은 한 가문의 번성, 백성의 풍요, 국가의 지속성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는다. 당초문양의 곡선은 무작위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연 성장에서 발견되는 비례 구조와 동일한 나선 패턴을 지닌다. 즉 당초문양은 자연의 생장 원리를 건축물에 투영하여 건물과 그 공간에서 이어지는 삶과 역할이 단절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시각적 기호로 남긴 것이다. 당초문양이 들어간 건축물은 단순히 기능을 수행하는 장소가 아니라 세대와 시대를 넘어 의미가 끊기지 않기를 기원하는 장소로 읽을 수 있다.

 

 

문양이 전달하는 건축 메시지

연꽃, 봉황, 당초문양은 각각 독립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건축의 성격에 따라 선택적으로 배치되거나 조합되어 더욱 큰 의미를 형성했다. 사찰 건축에서는 연꽃 문양이 중심을 이루어 수행과 깨달음을 강조하고, 일부 영역에 봉황 문양을 배치해 수행의 완성과 성취의 경지를 시각화했다. 왕궁과 관청에서는 봉황 문양을 전면에 두되, 당초문양을 함께 사용해 권력의 영속성이 덕성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정당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왕실 건축에서는 세 문양을 모두 함께 배치하여 덕을 갖춘 통치, 백성의 번영, 국가의 지속이라는 순환 구조를 형성했다. 즉 와당 문양은 건축의 구조를 장식하는 미술이 아니라 그 공간이 어떤 정신을 지향하고 어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기 바라는지를 시각적으로 기록해놓은 건축 언어였다. 눈에 보이는 조형을 넘어, 건축이 전하고자 하는 가치와 세계관이 문양 속에 담겼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