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와 조선의 궁궐에서 기와의 색은 단순한 외형적 선택이 아니라, 왕권과 국가 운영의 질서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장치였다. 이 글에서는 고려·조선 왕실 건축에서 쓰인 청기와, 회기와, 황기와와 같은 기와 색이 어떻게 위계와 권력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는지 탐구한다.
왕실 건축에서 색이 가진 재료적·정치적 의미
기와 색은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라 왕권과 국가 체제 전반에 연관된 상징 체계였다. 고려와 조선 시대 궁궐은 외형적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특정 공간에 기와 색을 달리하여 위계 구조를 드러냈다. 특히 청기와·회기와·황기와는 재료 구성의 차이뿐 아니라 정치적 의례, 왕실 의전, 국가 운영 방식의 차이를 담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이 색을 단순히 장식이 아닌 ‘권위의 질서’를 표시하는 기호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색이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관리되었다는 사실은 기와 색 선택이 장인의 자유가 아닌, 국가적 규범에 의해 결정된 고도의 정치적 행위였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궁궐 기와 색의 변화는 시대별 왕권의 구조와 재정 상황, 국제 교류까지 반영한 복합적 문화 현상이었다.
청기와의 탄생 배경 – 재료 과학과 외교적 영향
청기와는 구운 기와 표면에 광택을 내기 위해 특수 유약을 입히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흔히 단순한 청색 기와로만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흙·회·염분·동광석을 조합하여 유약을 제조하는 고난도 기술이 필요했다.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로 넘어오며 중국 원·명대 청자 유약 기술이 일부 유입되었고, 이를 왕실 건축에 적용하는 연구가 시도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청기와의 깊은 색감은 단순 장식이 아니라, 유약 중 금속 산화물의 열화 반응을 조절해 특정 파장의 빛을 반사하도록 설계한 기술적 성취였다. 당시 내유성·수밀성·내구성이 향상되어 빗물 침투와 열화에 강해 궁궐 상징뿐 아니라 기능적 효용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청기와는 외교·기술·재정이 조합된, 왕실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급 건축 재료였다.
회기와의 존재와 의미 – 왕실 공간의 ‘음양 분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기와를 단순히 일반 기와의 색으로 인식하지만, 조선 왕실에서 회기와는 분명한 위계적 의미를 지닌 색이었다. 회색은 자연 흙의 색에 가깝지만, 궁궐에서 쓰인 회기와는 흙의 철분 함량을 정교하게 조절하여 일정한 회색을 유지하도록 소성해야 했다. 이는 의도적 색 설정이었으며, 단순한 주변 건축물과의 조화가 아니라 ‘중심 권역과 주변 권역을 명확히 구분하려는 정치적 장치’였다. 조선 시대에는 왕의 직계 동궁, 후원 건물, 일부 문서 보관 시설에서 회기와가 운용되었는데, 이는 공간의 성격을 드러내고 왕을 중심으로 한 음양 질서를 건축적으로 재해석한 결과였다. 회기와는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질서의 경계를 설정하는 정교한 장치였다.
황기와의 제한적 사용 – 토양 기술의 희소성과 상징성
황기와는 흔히 금색이나 밝은 황색으로 오해되지만, 실제로는 흙에 포함된 황토 성분을 고온에서 반응시켜 은은한 황색을 띠도록 만든 기와를 말한다. 황기와는 고려보다 조선에서 더 명확한 제한 규정이 있었고, 특정 왕실 의례 공간이나 임금의 거처 일부에서만 사용되었다. 황기와가 귀했던 이유는 단순 색의 문제라기보다, 일정한 황색을 유지하기 위한 소성 기술이 매우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조금만 온도가 높아도 붉게 변색되고, 낮으면 회갈색이 되기 때문에 장인은 정확한 온도 제어 기술을 갖고 있어야 했다. 대량 생산이 어려웠기 때문에 황기와는 자연스럽게 희귀한 재료가 되었고, 이 희소성이 곧 권위의 상징으로 연결되었다. 또한 유교적 왕권 체계에서 황색은 중화를 상징하는 색으로, 왕권의 중심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기능을 했다.

고려와 조선의 색 사용 차이 – 기술과 권력 구조의 변화
고려 시대는 불교적 장식과 색채 사용에 비교적 관대하여 왕실 건축물에서도 청기와를 포함한 다채로운 기와 색 실험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조선은 유교적 절제와 형식성을 강조하면서 청기와 사용을 엄격히 제한했고, 일정 위계에 따라 기와 색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색의 변화가 아니라, 건축을 통해 국가 정체성을 표현하려는 정치적 의도였다. 조선에서 색이 통제된 이유는 왕권이 신하 집단과의 권력 균형 속에서 ‘상징 자원’을 더욱 전략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와 색은 곧 그 공간의 성격과 권력을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장치였고, 건축을 통해 국가 운영 방식을 외부에 드러내는 일종의 메시지였다. 이 점에서 고려와 조선의 기와 색 차이는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정치 구조의 차이를 반영한 결과였다.
궁궐 기와 색이 남긴 문화사적 의미
기와 색은 단순한 건축 재료의 차이가 아니라, 국가의 가치관과 제도, 기술 수준과 외교 관계까지 아우르는 종합 문화 요소였다. 청기와는 기술과 재정이 집중된 왕권의 상징이었고, 회기와는 질서와 기능을 구분하는 정치적 장치였으며, 황기와는 중심 권위를 나타내는 희귀한 재료였다. 이 색의 구조는 오늘날 문화재 보수에서도 중요한 단서가 되어 건물의 성격과 시대적 변화를 파악하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궁궐 기와 색은 사라진 왕실 제도와 건축 철학을 이해하는 하나의 언어이며, 당시 사람들이 색을 어떻게 해석하고 권위를 어떻게 표기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따라서 기와 색의 차이는 단순한 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기술·문화가 결합된 복합적 상징 체계로 평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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