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기와의 형성과 발전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동아시아 전반의 기와 기술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신라는 독자적인 기와 문화를 구축했지만 그 뿌리는 중국 남북조시대, 수·당대의 기술, 그리고 한반도 북부의 고구려와 서남부의 백제로부터 각각 다르게 유입된 복합적 요소를 기반으로 했다. 특히 신라는 외래 문화를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라, 여러 계통의 기와 양식을 조합해 본래의 구조를 변형하고 기능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독창성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다른 한국 삼국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중국 남북조시대의 기와
신라 기와의 형성과 발전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동아시아 전반의 기와 기술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신라는 독자적인 기와 문화를 구축했지만 그 뿌리는 중국 남북조시대, 수·당대의 기술, 그리고 한반도 북부의 고구려와 서남부의 백제로부터 각각 다르게 유입된 복합적 요소를 기반으로 했다. 특히 신라는 외래 문화를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라, 여러 계통의 기와 양식을 조합해 본래의 구조를 변형하고 기능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독창성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다른 한국 삼국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중국 수나라·당나라 시대의 기와
남북조시대는 중국의 건축 기술이 뚜렷하게 분화하던 시기로, 회벽식 건축과 목조 건축이 병행하면서 기와의 구조와 문양이 빠르게 변화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기와는 와면을 넓게 펴 경량화를 이루는 한편, 문양 역시 단순 선형에서 복잡한 연화문, 당초문으로 발전하는 과도기적 성격을 보여준다. 신라는 이 시기의 기술이 주는 ‘기능적 안정성’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 초기 기와 가운데 일부는 남북조 기와의 경사 배수 구조나 단순 연판문 구성을 유사하게 적용하는데, 이는 신라가 남조계 문화와 교류했던 울산·경주 해안을 통해 기술이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연화문 형식의 초기 배치를 볼 때, 외부 미감보다는 일정한 반복 배열로 지붕 전체의 균형을 강조하는 남조적 감성이 반영된 점이 눈에 띈다. 수·당대 기와는 기와의 표준화를 이루며 동아시아 기와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린 시기로 평가된다. 수·당대 기와는 규격화, 계량화, 반복 생산 기술이 체계화되면서 건축의 대형화·장식화와 함께 발전했다. 신라는 7세기 전후로 당과의 실질적 교류가 확대되면서, 수·당대 기와의 세부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대표적으로 수·당대 와당 문양인 사실적 연화문, 복합 당초문, 치밀한 규칙성을 갖춘 회전형 문양 구조가 신라 중·후기 와당에서 직접적으로 확인된다. 이것은 단순한 유입이 아니라 신라의 궁궐 재편, 사찰 확장, 도성 구조 정비와 함께 이루어진 변형적 수용으로서, 당시 신라가 대규모 기와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생산 체계까지 흡수했음을 시사한다. 특히 통일 직전부터 나타나는 ‘고운 선문을 깊게 새긴 와당’은 명백히 당대 조형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고구려의 기와
고구려 기와는 압도적인 양감, 두꺼운 기질, 강한 선각문이 특징이며, 견고함을 중시하는 북방계 건축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신라 기와가 남방계 기와에 비해 더 두꺼운 기질과 단단한 태토 조성을 보이는 점은 고구려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기와 제작 과정에서 점토의 입도를 조절해 내구성을 높이는 기술, 문양을 한 번에 찍는 대형 인장 사용, 맞배식 구조를 위한 처마부 조정 등은 고구려로부터 직접적인 자극을 받은 요소들이다. 신라는 단순히 고구려 기술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북방식의 견고한 구조를 남방식의 규칙적 문양 배열과 결합하여, 기와 자체의 실용성과 미감을 동시에 향상시켰다. 다시 말해, 고구려는 신라가 기와를 ‘더 오래 견디는 소재’로 인식하게 만든 핵심적 원류였다.
백제의 기와
백제 기와는 섬세한 조형 감각, 부드러운 곡선, 얕은 선각과 정제된 문양을 특징으로 한다. 백제가 일본 아스카 지역까지 기와 문화를 전파했을 정도로 고도의 기술을 보유했던 만큼, 신라가 이를 적극적으로 참조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신라는 백제 멸망 이후 대량의 장인층을 흡수했는데, 이 과정에서 백제의 정교한 연화문, 환문 구성, 선의 흐름을 중시하는 디자인 철학이 신라 왕경의 사찰 기와와 관영 와당에 빠르게 반영된다. 특히 신라 와당의 후기로 갈수록 문양의 일정한 대칭과 부드러운 회전 구조가 강화되는 것은 백제 조형을 신라식으로 재해석한 결과이다. 이처럼 백제는 신라 기와의 미감적 완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예술적 원류’였다.
네 계통이 만들어낸 신라 기와의 독창성
신라 기와의 원류는 단일한 계통이 아니라 중국 남북조의 실용적 합리성, 수·당대의 격식화된 문양 체계, 고구려의 강건한 구조 기술, 백제의 섬세한 조형 감각이라는 네 흐름이 뒤섞인 복합적 형태였다. 신라는 이들을 각각 차용한 것이 아니라, 시기별 건축 정책과 미감의 변화에 맞추어 선택적으로 흡수하고 변형하여 기와 문화를 구축했다. 바로 이 복합성과 변형 능력이 신라 기와의 최대 특징이며, 통일신라 시기에 이르면 기와 문양과 태토 조성이 삼국 가운데 가장 안정적이고 예술적으로 성숙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 신라 기와는 단순한 외래 문화의 집합이 아니라, 다양한 원류를 자기화하여 하나의 새로운 전통으로 승화시킨 독특한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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