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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통 기와

백제 기와의 특성과 변천

백제기와의 형성: 한성 시기

한성 시기 백제 기와는 흔히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초기 형태’로만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백제만의 토질 인식과 혼배 기술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시기의 기와는 압축 강도를 높이기 위해 서로 다른 지역에서 채취한 점토를 섞는 혼배 공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예컨대 풍납토성 주변 점토는 너무 점성이 강해 가마 내부에서 균열이 생기기 쉬웠고, 반대로 암사동 일대 점토는 건조 시 수축률이 높았다. 백제 장인들은 이 두 종류의 점토를 비율 조절해 혼합함으로써 초기임에도 상당히 안정적인 기와를 생산했다. 이는 단순히 자연재료의 선택이 아니라, 각 토질의 ‘소성 반응’을 경험적으로 파악한 초기 공학적 시도였다. 또한 한성 시기의 기와는 외형적 단순함 속에서 의외로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예컨대 수키와 내부에 길고 얕은 홈을 파거나, 기와 테두리에 미세한 파도형 흔적을 넣은 경우가 있는데, 이는 지붕 위 빗물의 흐름 속도를 조정해 누수를 방지하려는 조치였다. 오늘날로 치면 초보적이지만 기능적으로 설계된 배수 구조라 할 수 있다. 한성 시기의 기와가 전체적으로 두껍고 무게가 많이 나갔던 것은 목재 구조가 아직 대형화를 이루지 못했고, 무거운 기와 자체가 지붕틀을 단단히 눌러주는 구조적 안정 장치로 작동했기 때문이라는 건축 공학적 해석도 가능하다.

 

 

백제 기와의 전환: 웅진 시기

웅진 시기는 잦은 전쟁과 외세 압박으로 인해 백제 건축이 기능성과 내구성을 최우선 가치로 둔 시기였다. 이 변화는 기와 제작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특히 웅진 시기의 기와는 ‘방어건축형 기와’라고 부를 만큼 두껍고 질량감이 있으며, 표면을 일부러 거칠게 처리한 사례가 많다. 기존 연구에서는 거친 표면이 제작기술 미비 때문이라고 간단히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미세한 거칠기’가 빗물의 난류를 줄여 기와 표면에서 물이 미끄러지듯 빠르게 배출되도록 하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는 고대 건축에서 배수 시스템의 효율화가 방어력에도 직접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백제가 이미 인식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웅진 시기의 또 다른 특징은 와당 제작 방식에서 나타난다. 이 시기 와당의 문양은 기교를 줄이고 굵은 선을 강조했는데, 이는 단순히 예술적 후퇴가 아니라 먼 거리에서도 문양의 상징성이 쉽게 인지되도록 한 ‘가시성 디자인’이었다. 왕궁이나 성곽에서는 외부에서 건축의 위계를 식별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였기에, 연꽃이나 당초 문양의 선을 굵게 하거나 음각 깊이를 깊게 파 넣음으로써 장식이 아니라 ‘기호 체계’로 기능하도록 만든 것이다. 또한 웅진 시기에는 기와 제작 공방의 분업화가 더욱 정교해졌다. 한성 시기에는 장인이 거의 전 공정을 맡는 방식이었다면, 웅진에서는 점토 정제조, 성형조, 문양조, 소성조 등 역할이 나뉘어 생산성이 높아졌다. 이는 문헌에 거의 언급되지 않는 사실이지만, 출토지에서 발견되는 작업 흔적과 폐기 기와의 종류 차이를 분석하면 분업화된 체계가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백제가와의 특성과 변천

 

백제 기와의 발전: 사비 시기

사비 시기 백제 기와의 가장 큰 특징은 정교한 치수 규격화다. 기존 기와들은 길이와 폭이 일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으나, 사비 시기의 기와에서는 ±2~3mm 오차 내에서 동일한 크기가 반복 제작되었다. 이는 단순 기술 발전이 아니라, 사비 시기의 왕궁·사찰들이 대형화되며 ‘기와 조립의 효율성’이 핵심 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밀한 규격화 덕분에 기와가 더 촘촘하게 결합되고, 중첩되는 부분의 미세한 틈이 줄어들어 배수 기능도 크게 향상되었다. 사비 시기의 기와는 또한 색감과 질감에서 백제 특유의 고운 미적 감각이 극대화되었다. 철분 함량을 조절하기 위해 일부러 특정 층위의 점토만을 별도로 채취하거나, 소성 과정에서 온도 차이를 크게 하여 다양한 색조를 만들어냈다. 이 중에서도 ‘황갈색과 회갈색의 혼재’가 사비 기와의 대표적 특징인데, 이는 건물 전체가 햇빛을 받았을 때 색감이 균일하게 보이도록 계산된 컬러 조합이었다는 점에서 심미성과 기술의 결합이라는 의미가 있다. 와당 문양 역시 사비 시기에는 백제 미술의 정점을 보여준다. 연꽃문양의 중심부가 깊게 파여 있으며, 외곽으로 갈수록 선이 부드럽게 퍼지는 조형 방식은 마치 점토 위에 빛이 스며드는 듯한 시각 효과를 준다. 이 문양은 단순 장식이 아니라 사비 시대 불교 미학을 기와라는 건축재로 확장한 예술적 표현이었다.

 

 

백제 기와 변천의 총체적 특징: 정치·기술·미감의 상호 작용

한성·웅진·사비 세 시기의 백제 기와는 단순한 시간 흐름이 아니라, 국가의 정치적 상황과 건축 목적 변화에 따라 구조적·기능적·미적 요인이 서로 영향을 주며 발전한 과정이었다. 한성 시기에는 기초 기술 확립이 중심이었고, 웅진 시기에는 국가 불안정 속에서 기능성과 내구성이 강조되었다. 마지막으로 사비 시기에는 국가의 안정과 국제 교류 확대 속에서 미적 감각과 기술적 정교함이 정점을 이루었다. 이 흐름은 백제 기와가 단순한 건축 재료가 아니라, 백제 사회의 정치적 긴장, 경제력, 종교적 신념, 국제문화 교류까지 압축적으로 담아낸 ‘시대의 반영체’였음을 의미한다. 기와의 두께 변화, 문양 심도, 색채 비율, 치수 규격화, 배수 시스템 설계 등 세부 요소들은 모두 시대의 필요와 사유 체계 속에서 조정되었다. 결국 백제 기와의 변천은 백제 사회의 성격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물질문화적 지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