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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통 기와

고려시대 기와와 조선시대 기와의 비교

고려 기와의 생산 체계와 기술적 특징

고려시대의 기와는 국가적 수공업 체계가 정비되면서 정형화된 제작 방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였다. 특히 고려 전기부터 ‘소(所)’라 불리는 특수 행정구역이 설정되어 특정 지역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기와 제작을 담당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는 생산의 지속성과 규모를 확보하기 위한 국가적 조치였으며, 이러한 체제는 기와의 규격과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다. 고려 전기의 평기와는 어골문, 무문 등 단순하지만 밀도 높은 등문양이 특징이며, 장판타날을 통해 횡방향 타날이 이루어진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성형 과정에서 점토판을 일정한 방향으로 눌러 패턴을 만드는 기술이 규칙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내·외면의 조정 방식이 점차 통일되면서 상단부 횡방향 물손질 흔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정형화는 지역 가마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었고, 충청지역·전라도·경상도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유사한 기와 양식이 확인된다.

 

 

고려 기와의 조형성: 문양과 기능의 공존

고려 기와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문양의 조형성이다. 고려 시대는 사찰 건축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며 와당의 조형성이 발달했는데, 연화문·당초문·집선문 등 다양한 문양이 사찰의 위계와 상징성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특히 평기와 등면의 어골문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기와의 강성과 건조 수축을 조절하기 위한 기술적 장치로 기능하였다. 고려 중기 이후 정형화가 가속되면서 문양은 미학적 기능보다 제작의 효율성과 규격 일치에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문양 밀도와 타날 방식은 보다 통일성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기와 생산의 대량화와 직결된다. 당시 관영수공업은 공장(工匠)을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기와 제작 기술을 국가적으로 통제한 덕분에 일정한 품질의 기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다. 고려 후기에는 이러한 관리 체계가 더욱 공고해져, 사찰·관청·궁궐에 공급되는 기와의 품질 편차가 크게 줄어들고 규격은 거의 국가 표준에 가까웠다.

 

 

고려시대 기와와 조선시대 기와의 비교

 

조선 기와의 국가 규격화와 건축 정책의 영향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기와는 기술적·제도적 측면에서 한 단계 더 분화되고 구체적인 관리 체계 속에 들어가게 된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건축 행정 체계를 확립하고 기와 제작을 국가적 공정으로 관리하면서 궁궐과 관청에 우선 공급될 기와의 규격을 명문화하였다. 이는 고려시대의 ‘정형화된 경향’을 훨씬 더 직설적인 규격 준수로 이어가게 만들었다. 조선 전기에는 기와 제작에서 물손질·타날·성형 등 고려의 기술을 이어받았으나, 점차 장인의 경험보다 ‘관청에서 정한 치수와 양식’을 우선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평기와는 고려의 것보다 폭이 다소 줄어들고 두께가 일정해지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기와의 무게를 줄여 목조 구조의 처짐을 완화하고 지붕의 경량화를 도모하기 위한 조치였다. 또한 조선은 건축에 사용되는 기와를 용도에 따라 더 명확히 구분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궁궐·관아·민가에 사용되는 기와의 질과 문양, 색감은 위계에 따라 달리 적용되었다. 이는 조선이 건축 재료를 통해 사회적 질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특성이다.

 

 

조선 기와의 양식 변화와 공공 건축의 확대

조선 중·후기로 가면 사찰뿐 아니라 성곽·관아·향교·서원 등 다양한 공공 건축이 늘어나면서 기와 수요도 증가하게 된다. 이 시기 기와는 고려보다 제작 방식이 더 단순화되고, 문양 역시 실용성을 우선하여 복잡한 조형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고려 시대의 화려한 와당 문양은 조선 중기 이후 점차 절제된 양식으로 전환되며, 특히 평기와 등면의 문양은 간략화되거나 거의 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조선 후기 건축이 ‘절제된 미감’과 ‘실용 중심’으로 이동한 흐름과 연결된다. 또한 조선은 지방 수공업의 발전으로 관영기와와 민영기와가 동시에 존재하였고, 서민 주택에서도 기와 사용이 증가하면서 기와 제작의 지역별 차이도 뚜렷해졌다. 예컨대 충청 지역의 기와는 고려 시대처럼 정형화의 영향이 강하게 남았지만, 경상도와 제주 지역에서는 토질·소성 온도 등의 차이로 색감과 강도에 변 variation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조선 후기에는 이러한 지역적 특성이 오히려 기와 양식의 다채로운 변화를 이끄는 요인이 되었다.

 

 

고려와 조선 기와의 총체적 비교

종합적으로 보면 고려 기와는 기술의 정형화와 국가적 생산체계의 기반을 마련한 시기이며, 조선 기와는 이를 더 체계화하고 규격화하여 사회적 질서와 건축 정책을 반영한 재료로 진화한 시기이다. 고려의 기와가 다소 지역적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관영수공업의 세력 아래 점차 통일성을 확보했다면, 조선의 기와는 중앙정부 주도의 규격화를 바탕으로 위계질서가 반영된 재료로 발전하였다. 고려의 기와는 문양과 조형성이 더 강했으며, 사찰 중심의 건축 활동을 배경으로 발전한 반면, 조선 기와는 관청·궁궐·민가까지 확대되며 범용성과 실용성이 강조되었다. 또한 고려는 제작 기술의 성립기와 정형화가 이뤄진 시기라면, 조선은 기와의 사회적 의미와 경관적 효과까지 포함한 폭넓은 ‘건축 재료의 제도화’를 완성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고려와 조선의 기와는 단순한 재료의 차이를 넘어 건축 양식, 사회 구조, 생산 체제, 국가 권력의 작동 방식까지 담아내는 중요한 문화 요소로서 시대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